20200215 NT Live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리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020년 2월 15일 토요일.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그 이름도 유명한 NT Live의 한 작품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보고 왔습니다. 제목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동안에도 이름이 가물가물해 결국 틀린 번역 제목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말았네요..(하지만 지금은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빨리 쓰고 자고 싶어요..)

 


NT Live 란, 영국 국립극장에서 상연되는 공연 실황을 영상으로 제작해 전 세계의 극장에서 영화처럼 관람할 수 있는 '공연 실황 중계'와 같습니다. 영국 내셔널 시어터에서 공연 실황을 영상물로 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고(제가 알기론 10년 정도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많은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플랫폼이라 웬만한 NT Live의 작품들은 일찍 예매를 하지 않으면 그 표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하지만 코로나의 여파와 주말 늦은 시간의 3시간 러닝타임이라는 부담 때문인지 다행히도 주말 마지막 공연의 티켓이 남아있어서 바로 예매를 해버렸습니다! (티켓 가격도 저렴해요! 영화보다는 비싸고 공연보다는 저렴한 전석 2만 원!)

 

 

 

 


극장을 들어가기 전 3시간의 러닝타임에 부담과 두려움을 느낀 저는 오랜만에 공연이 주는 숨 막히는 희열과 배고픔.... 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미션이 되자마자 극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같이 보러 간 친구 또한 '미쳤다..'라는 말만 연신 반복한 채 매점 카페에서 산 샌드위치를 욱여넣고 있었죠. 공연을 보는 내내 연극이라는 무대 예술이 주는 음악성을 계속해서 느끼며 배우들의 움직임과 대사에서도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 연주와 같은 멜로디, 리듬, 템포, 다이내믹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 극 예술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한 시대의 연극 트렌드를 긴 호흡으로 이끌고 가듯이, 분명 이런 연극이 세상에는 존재 해왔는데, 이런 트렌드에 뒤쳐진 제 자신을 한탄하며 2막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들어왔습니다.


극의 큰 줄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극의 제목처럼 주인공 크리스토퍼의 옆집에 사는 부인의 개가 죽습니다. 정말 한밤중에 개의 주인은 곡할 노릇이 되어버린 거죠. 자폐증을 가진 소년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개를 죽였다는 의심을 받게 되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노트에 써 내려갑니다. 마치 소설을 쓰듯이. 그의 부모는 이미 이혼을 해 아빠와 살고 있는 크리스토퍼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마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아빠로부터 듣게 됩니다. 어느 날, 자신이 개 웰링턴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크리스토퍼는 아빠로부터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고 자신이 쓰던 소설책을 빼앗깁니다. 빼앗긴 소설책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 아빠의 방을 샅샅이 뒤지던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쓰던 소설과 함께 편지 무더기를 발견합니다. 그건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보내는 편지. 분명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짜 이후의 편지였습니다.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신한 크리스토퍼는 엄마가 편지에서 말한 런던의 한 장소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되죠. 

 


보통 이러한 추리물의 경우 극의 서사가 관람의 키포인트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제가 관람한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제목 너무 어렵다..)에서는 그 결말을 향해가는 '크리스토퍼'의 행동과 심리 변화 그리고 그가 처하는 여러 환경과 상태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 이건 갑자기 생각이 난 건데, 이 작품의 제목이 이렇게 장황한 이유가 이 모든 소설의 내용이 크리스토퍼에 의해 쓰였고,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정보를 선별하지 못하고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점에서 '사건 그 자체'를 문장으로 열거해 둔 이 제목이 크리스토퍼라는 인물과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아무튼, 집이라는 작은 공간을 떠나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머나먼 곳으로 떠나게 된 크리스토퍼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떠납니다. 이 과정에서 연출 메리앤 엘리엇이 어떻게 천재적으로 작품을 구성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객의 상상력은 배우의 행동에 의해 더 강화됩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열거해보자면,

1. 크리스토퍼가 어떤 공간에 들어가서 하는 일련의 동작을 '대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배우들과 크리스토퍼와의 컨택 움직임으로 표현한 점.

2.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크리스토퍼

3. 큐빅 박스 하나로 열차 속 승객들의 모습을 표현한 장면

 

그 외에도 기상천외한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은 본래 대본의 지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연출가 매리앤 엘리엇의 머릿속에서 창조되어 나온 것이죠. 

 

 


마지막으로 이 극은 '장애'나 '자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극이 시작하기 전 극작가와 원작자가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하죠. 대신 이 극은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존중할 때 자신만의 진정한 삶을 지키며 모두가 어우러져 살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좀 더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을 하죠. A레벨 수학시험에서 A+를 받고,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생명(강아지)을 선물 받습니다. 그 방식이 어떠하든 자신을 책임져온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성장한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설을 쓰고 마지막 커튼콜에서는 마치 '원 맨 쇼'를 하듯 세상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떨쳐낸 듯 수학 공식을 자신 있게 관객들에게 증명해내죠. 이 수학 공식에 대한 증명은 단순히 수학공식에 대한 수학적 증명이 아닌, 크리스토퍼 자신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증명과 확신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번 NT Live를 통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저는 앞으로 모든 NT Live의 레퍼토리를 모두 챙겨보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공연예술 세계는 너무나도 협소해서 자칫 잘못하면 어느 순간 제 자신이 알량한 지식과 경험으로 아집을 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다양한 공연 예술을 접하고, 공연 예술에 몸을 담고 또는 몸을 담고 싶은 분들이라면 우리의 공연예술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저 너무 피곤해요!! 이제 자러 갈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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