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적인 영화리뷰]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2000)

* 본 포스팅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을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사실 스포일러를 알고 영화를 보셔도 무방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영화 <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2000)

영화<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2000)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제이미 벨, 줄리 월터스, 게리 루이스

 

 

남성성이라는 철옹성을 깨부순 어느 한 소년의 힘찬 몸짓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이전에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존재했고, 제이미 벨이라는 배우가 존재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뮤지컬<빌리 엘리어트>

영화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모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남성 중심사회'에발레를 하려는 한 소년의 재능과 의지로’  그 철옹성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그 철옹성은 빌리의 아버지로 상징될 수 있으며 그것은 더 나아가 그 지역사회의 탄광노조의 파업으로까지 확대가 된다. 물론 탄광노조라는 사회적인 남성성이 빌리의 아버지를 규정해버린 것 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우선 결과만 놓고 보자면 영화는 시골마을 소년의 성공신화, 개천에서 용 나기 등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조금만 더 깊이 내다보면 영화 속 곳곳에는 그 당시 사회, 아니 지금의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 젠더 문제들을 마주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빌리라는 인물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 만약 뮤지컬 <빌리엘리어트>만 관람한 분이 계시다면,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꼭 한 번 보라고 추천해드리고 싶다. 영화 개봉 당시 만 14세밖에 되지 않았던 제이미 벨(빌리 엘리어트 역)은 발레에서 뿐만 아니라 연기에서까지 탁월하게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그리고 영화의 '음악적인' 연출은 뮤지컬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아니면 관객들을 매료시킬 쇼적인 요소에 더 중점을 두었기에) 다양한 갈등 양상과 인물들의 심리를 뮤지컬보다 더 뮤지컬스럽게 보여주기도 한다.

 

 

 


 

왜 하필 발레였을까?

왜 하필 발레였을까? 지금은 그런 인식이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발레는 몸에 달라붙는 레오타드를 입고 튀튀를 입은 채 여자아이들이나 추는 춤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있다. 그렇기에 그 당시 시골마을에서 남자이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복싱을 배우는 소년이 발레를 우연하게 맞닥뜨리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소년이 발레리노의 꿈을 꾸게 된다면? 에 대한 결과는 당연하다. 사회의 편견은 고사하고 가족이라는 커다란 벽에 그 꿈은 가로막힌다. 애초에 영화는 빌리의 가정에서 '여성'을 부재시켰다. 빌리의 가정에 존재하는 여성들은 빌리에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거나(엄마), 가족 구성원으로서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치매에 걸린 할머니). 이로 인해 남성성으로 지배된 가정에서 자라온 빌리는 탈출구를 전혀 찾지 못한 채 견고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갇힌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물론 엄마와 할머니가 가족 구성원으로 존재했어도 그 당시의 사회적 풍조는 빌리의 꿈을 가로막았을 것이 틀림없다.

 

빌리의 할머니, 빌리 친구 마이클

하지만 가족 내에서의 빌리의 꿈에 대한 조력자가 부재했기 때문에 윌킨슨 선생님의 등장은 빌리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희망을 관객들에게 던져준다. 발레 선생님뿐만 아니라 게이 친구 마이클, 동네의 여자아이들, 어머니(어머니의 유품), 그리고 할머니 등 빌리의 꿈을 지지하는 사람 또는 사물들은 사회가 규정한 남성성에서 멀어져 있다.탄광촌의 남성들이 노조라는 강력한 사회집단 속에 똘똘 뭉쳐있다면 빌리의 조력자들은 그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빌리는 드라마 속 성장하는 단계에서 이 둘의 경계선에서 서서 비로소 선택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남성성의 집단이든, 윌킨슨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든, 빌리가 처해있는 모든 환경은 빌리를 '발레'로 이끌어간다. 오히려 파업은 남성 세계를 견고하게 보여주는 매개체인 동시에 빌리가 발레를 할 수 있게 연결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빌리가 처음 발레수업을 접할 수 있었던 계기 또한 파업으로 인한 것이었고, 파업하는 노동자의 등장으로 인해 발레에 관련된 책을 빌 리가 훔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업으로 인해 생겨버린 빌리의 삶의 작은 균열은 빌 리가 그 벽을 뚫고 더 큰 세상의 빛을 마주하게 도와준다.

 

 

 

 


이 영화는 정말 해피엔딩일까?

 

그렇게 영화는 고난과 역경을 뚫고 빌리가 꿈을 이루는 해피엔딩으로 치닫게 된다. 빌리가 로열발레단에 합격한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아버지에게 말하는 파업은 끝났어!’라는 대사는 이 드라마가 개인이 꿈을 이루었다는 메시지의 한계에 갇히게 한 듯한 느낌을 준다. 파업은 좌절되고 가족들, 마이클, 윌킨슨 선생님은 예전과 똑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다만 그곳에 빌리만 없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빌리가 꿈을 이룬 이후 가족들의 삶, 변화된 삶에 대해 묘사하거나 예상하지 않는다.

빌리는 런던으로 오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다시 더 럼의 탄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빌리의 마을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와 자본가들의 갈등이 계속될 것이고, 마이클은 그 마을을 떠나지 않는 이상, 혹은 사회가 그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 속 빌리의 성공은 다른 주변인들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관객들에게 보인다. 영화는 빌리와 빌리가 날아오는 것을 객석에 앉아 지켜보며 벅차오르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편견을 깨고 꿈을 이룬 빌리는 한 없이 날아오르지만, 사회를 바꾸지 못한 이들은 객석에 앉아서 날아오르는 빌리를 바라보고만 있다. 오히려 이런 찝찝한 해피엔딩은 한 개인의 꿈은 이뤄졌지만 변화지 않은 요지부동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동시에 한 개인의 꿈이 이뤄짐으로 인해서 사회는 바뀔 준비를 서서히 하게 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선물하기도 한다. 

 

예술이고 싶은 사람들의 지성&감성 창고 <배우적인 느낌>

인스타그램 @Feel_Like_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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