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웃는남자> 후기(박강현/이수빈/김소향/민영기/김경선)

배우적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틀 전 보고 온 뮤지컬 <웃는 남자> 후기를 써보려고 해요.

 

 

작품을 소개하는 포스팅이 아니라 지극히 제 개인적인 주관을 담고 있는 글이기에

일기형식으로 작성하기로 하고, 지금부터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2020-01-10 금요일, 예술의 전당에서 오픈한 뮤지컬 <웃는 남자>를 관람하고 왔다.

 

 

초연 당시, 뮤지컬 <웃는 남자>는 어마어마한 제작비 투입, 박효신이 주인공 그웬 플렌으로 합류, EXO의 수호, 박강현, 정선아, 신영숙, 정성화 등의 화려한 캐스팅으로 그 해 뮤지컬 어워즈의 모든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해낸다. 사실 초연을 관극 한 나로서는 '극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뮤지컬 <웃는 남자>의 상 쓸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재연 관극이 특별한 건 내 편입 동기가 공연의 앙상블로 출연을 하기 때문이며(자랑스러운 도마뱀 소년 화이팅!), 얼마 전 <웃는 남자> 시츠프로브 영상에서 '내 안의 괴물'로 미친듯한 에너지와 표현력을 보여준 조시아나 역의 김소향 배우가 첫 공연일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 티켓팅을 하고 객석에 들어갔을 때 간간히 들리는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선율, 그리고 객석 등이 꺼지고 극의 OVERTURE가 울리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1. 드라마

하늘을 향해 끝없이 치솟는 1%의 욕망, 끝없는 불구덩이로 추락하는 가난한 자의 지옥

 

 

내가 요즘 공연을 보러갈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은 극의 '드라마'가 공연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뮤지컬이 음악만 나열해놓은 갈라쇼가 아니라 '플롯'속에서 드라마를 전달하는 극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뇌리에 남는 킬링 넘버가 있다고 하더라도, 드라마의 개연성, 인물의 매력, 플롯의 논리성이 없으면 극의 매력이 반감된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드라마는 사실 단순하다. "결함을 가진 자(그웬 플렌)의 성장과 사랑- 출생의 비밀-사회 변혁의 시도-좌절-귀환-비극적인 사랑."이 극의 드라마의 전부다. 

 

하지만 이번 <웃는 남자> 재연에서는 그웬 플렌과 데아의 관계를 더 쉽게 좇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치 그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하얀 눈밭 속에서 지켜주고 싶은 순수한 눈의 결정체 같은 사랑이라고나 할까? 초연 때만 해도 결말을 마주한 나는 '...읭?'과 함께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들이 떠올랐는데 이번은 그 결말이 한 층 더 공감이 되었다.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으로 만들어 팔아넘기는 악질 범죄 조직 '콤프라치코스'는 극의 시작과 함께 거센 파도 속에서 어린 그웬 플렌과 등장한다. 하지만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 듯한 호리병만 콤프라치코스에게 넘긴 채 버려진 그웬 플렌은 눈 속을 헤매다 얼어 죽은 여인의 품에 안겨있는 데아를 만나게 된다. 그들의 만남 자체가 신비롭고, 상처가 있으며, 무언가 비 정상적이기에 오히려 그들의 만남이 더욱더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입이 찢어져 흉측한 모습을 한 '그웬 플렌'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데아'는 '이 시대의 츤데레', 마치 '해리포터의 헤그리드'를 연상시키는 우르수스의 손에 길러지며 유랑 극단의 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세상이 바라보길 꺼려하는 혐오스러운 구경거리 '그웬 플렌'과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데아는 모두 '결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 둘은 단단하게 엮인 마음의 끈으로 서로의 결함을 채워주며 마음의 눈으로 사랑을 하며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버텨'낸다. 

 

 

 

 

뿐만 아니라 초호화 스펙터클을 통해 상위 1%와 그 상위 1%를 떠받들기 위해 고통받는 빈민들, 그리고 그 상위1% 속의 치정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갈등은 드라마 속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이 갈등은 극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깊이 연관되어 있고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명제(?)를 나타내기 위한 핵심 요소이다. 가령 초록이 우거진 고급스러운 귀족들의 사교의 장인 거대한 '가든'은 똘똘 뭉쳐서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그 당시 1%의 삶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고, 해체되어 있는 플랫들로 이리저리 이동하며 완성되는 유랑극단의 공연장, 그리고 난잡하고 요란한 의상과 누더기는 그들이 살았던 사회의 시대상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워낙 원작의 방대한 스토리를 압축하고 그웬 플렌과 데아의 비극적인 사랑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전개 될수록 원작에 대한 갈증이 점차 커진다. 하룻밤 사이에 귀족이 된 그웬 플렌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1%에 대항하려고 하는 시도는 앤 여왕의 말한마디로 인해 허무하게 짓밟히고 그웬 플렌은 순식간에 우르수스와 데아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조시아나는 정작 가질 수 없어 가지고 싶던 괴물이 자신의 결혼 상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오히려 차갑게 등을 돌린다. 그리고 귀족들에게 의회에서 짓밟힌 그를 위로(?)하며 애매한 퇴장을 한다. 상황이 이해는 가지만 중간중간 개연성과 논리성이 부족한 장면들의 점프가 계속해서 일어나며 극의 밀도가 일순간 낮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작을 2시간 30분의 극에 담는 시도 자체가 박수받아야 할 일이고, 어쩌면 <레미제라블>처럼 조금 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드러낼 것들은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원작을 뛰어넘는 2차 가공물은 존재하기 어렵기에 무대 위에 압축되어 구현된 공연을 보고 원작을 접하면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라는 원작이 주는 메시지와 이미지는 더 선명하게 다가올 것 같다.

 

 


2. 음악

'한국 뮤지컬', '한국인' 그리고 '프랭크 와일드혼'

 

 

한국 뮤지컬에서 프랭크 와일드혼은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브로드웨이가 아닌 한국 뮤지컬계에서만 인정받는 인물이라고해도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렇고 한국 관객들은 그의 음악을 좋아하니까. 사실 배우 지망생의 입장에서 그의 음악이 정말 좋은 건 '음악만 떼놓고' 보더라도 그 속에서 다양한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연 때 뮤직비디오로 공개된 '나무 위의 천사'는 프랭크 와일드혼 특유의 '내가 바로 뮤지컬 배우다!!!' 하는 극 고음이 없는 넘버임에도 불고하고 많은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웬 플렌의 거의 모든 넘버는 노래 좀 한다는 입시생들의 단골 넘버가 되어 입시장, 컨테스트장만 가면 입 찢어진 남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류의 아리아 넘버들은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하나의 팬서비스처럼 느껴진다. '나 지금 화났어! 그러니까 조심해!'를 넘버 속에 녹여부르고 관객들은 배우가 표현하는 에너지에 압도당하고 자연스레 음악이 끝난 뒤 박수를 친다. 다만 그 이외에 가사 전달이 중요한 '극의 드라마를 전개하기 위한 넘버들'에서는 왠지 모르게 가사들이 꽂히지 않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전개하기 위한 넘버는 프랭크 와일드혼식의 작곡에 자주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으로서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3. 배우

김소향 조시아나, 김경선 앤 여왕 그리고 박강현

 

 

관극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한 보석같은 배우들을 마주할 때 정말 행복하다. 특히 실제로 만난 김소향 배우는 굉장히 여리여리한 체구에 선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 배우가 무대 위에서 조시아나로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차원이 달랐다. 실제로 치정에 얽혀 안 그래도 독기를 품고 사는 여자가 세상의 있는 독기 없는 독기를 모두 빨아들여 세상을 향해 뱉어내는 듯한 '내 안의 괴물'은 전율 그 자체였다. 조시아나라는 인물이 어떻게 보면 가장 극 속에서 개연성과 필연성이 부족한 인물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인물을 마냥 미워할 수 없게 관객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배우의 에너지와 표현력이 정말 빛났던 것 같다. 앤 여왕의 김경선 배우는 특유의 비음섞인 목소리로 어딘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캐릭터를 표현함과 동시에 유랑극단 단원으로 등장할 때는 앤 여왕이라고는 믿기 힘든 몸의 자세와 제스처 그리고 잔망스러움으로 극의 재미를 한 층 더 끌어올렸다. 특히 앤 여왕이었을 때 '우린 상위 1%'에서 한 음을 길게 끄는 부분은 한 마디로 기억에 남는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강현 배우는 무대에서 필요한 긴장만 사용한다. 특히 노래를 하면서 불필요한 힘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그 어려운 넘버들이 그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저 정도면 불러볼 수 있겠는데?'하고 연습실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순간 사망.(삐--------) 

 

 

 

그 외의 배역, 앙상블 배우들 또한 공연예술계에서 검증된 배우들이 다수였기에 큰 실수 없이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프리뷰 공연이었던 탓인지 잔실수, 무대에 걸려 삐끗거림, 테크 결함이 몇 장면에서 보였다. 처음 어린 그웬 플렌이 가사를 까먹고 멈칫 하는 순간 당황스럽지만 귀여운 마음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2막에서 사라진 그웬 플렌을 찾는 이수빈 데아의 마이크가 나오지 않아 내가 당황스럽고 불안했다. 그래도 프리뷰 공연도 관객들에게 돈을 받고 티켓을 판매하는 공연인 만큼 충분한 드레스 리허설, 테크 리허설을 통해 배우의 안전과 극의 완성도를 동시에 보장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드라마, 배우, 스펙터클, 무대 등 다양한 극적 요소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저 17-18세기의 모습이 비단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가 아닐까.'하고. 

 

 

예술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지성 & 감성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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