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적인 느낌의 네 번째 오디션 - 1

내 이름이 호명된 첫 번째 오디션

'1차 오디션 합격자 안내'

 

이미 친구로부터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전달받았지만, 나는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내 이름은 보이질 않고 *로 가려졌지만 합격한 다른 지인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명단 파일을 종료하고 연습일지와 태블릿을 챙겨 조용히 연습실로 향했다.


나는 아직 오디션 경험이 많지 않다.

 

물불 안가리고 어떤 작품이든 무대 위에만 세워달라는 열정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소위 말하는 '메이저' 작품들의 오디션만 지원한 탓에 졸업을 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손에 꼽을만큼의 오디션만 본 것이다.

 

첫 번째 오디션은 뮤지컬 <마틸다>

 

학부 시절 몰래 오디션을 신청하고, 같은 타임의 동기와 몰래 다녀왔다. 그래도 배운게 영어질이라고 해외 크리에이티브팀 중 하나가 내가 노래를 부른 뒤 "All up."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게 또 귀에 들어와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더니 '엉망이 되다.'라는 뜻이었다. 물론 잘못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날의 내 노래는 "All up" 그 자체였기 때문에 '망했구나.'하고 오디션장을 도망치듯 나왔다. 오디션장에 점만 찍고 학교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지만 몰래 다녀왔기에 오디션 첫경험의 쓰라린 부끄러움은 나 혼자 간직할 수 있게되었다. 덕분에 신당동 떡볶이만 맛있게 먹고왔다.

 

두 번째 오디션은 뮤지컬 <아이다> 오디션.

 

1차가 안무 심사였는데 이미 오디션을 보고온 동기들과 선배들이 현장에서 배워온 안무를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약간의 편법이긴 하지만 그 당시 오디션장에서 안무를 가르쳐주는 안무감독님 또한 '이미 다 알고온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있는 것만 같았다. 연습을 했기에 남들보다 나을 줄 알았다. 첫 안무동작이 파세(발레에서 발을 무릎까지 올리는 동작)를 하고 턴을 한 바퀴 씩 도는 동작이었는데, 제대로 이 동작을 하면 분명 한 바퀴를 돌고 앞에 있는 심사위원을 봐야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음악이 시작되고 동작을 했는데 내 눈 앞에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대기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이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 한 바퀴를 못 돌아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역시 합격자 명단에 내 번호는 없었고, 불리지 못한 애꿎은 악보만 구깃구깃 가방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본 <베어 더 뮤지컬>.

 

이번에는 지정곡 심사가 1차 테스트였다. 이 오디션의 결과도 물론 탈락이었지만, 오디션을 보러가는 날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나를 오디션장에 데려다주기위해 차를 끌고 학교로 왔다. 가는 길에 근처 절에 들러서 같이 기도도 했다. 차에서 오디션곡을 불렀고, 친구들은 "역시 배우의 발성은 남다르군."하면서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결과를 떠나서 그 순간이 행복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에 소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합격자 명단에 올라간다는 건 대체 무슨 느낌일까?

캐스팅보드에 이름 하나, 사진 한 장 올리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고작 세 번 오디션을 본 병아리 배우지망생이 말한다.

 

 

 

대망의 네 번째 오디션. 뮤지컬 <제이미>.

 

'배우적인 느낌' 계정을 통해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뮤지컬이고, 이 뮤지컬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분 그 자체였다. 오디션 또한 현장 안무가 아니라 지정 안무 동영상이 있었기에 '이건 열심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같이 오디션을 지원한 친구들과 함께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너무 오랜만에 몸을 쓴 탓인지 1분 짜리 춤을 한 번만 춰도 온 몸에 땀이 흐르고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이런 몸상태와 체력이 되도록 내 신체를 방치했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계속 췄다. 계속 찍고, 계속 봤다. 연속 세 번을 연달아 추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노래까지 부르기도 했다. 내 폐는 터질 것 같고 내 근육들은 찢어질 것 같이 힘든데, 내 마음은 몸이 찢어지는 만큼 기뻤다. 

 

그리고 오디션 전날, 일부러 내 몸을 노곤하게 만들기 위한 공을 들이기로 했다. 평소에 일어나지 않는 시간에 일찍 일어나 먹다 남은 빵을 먹으며 위를 깨우고, 커피 수혈로 정신을 깨운 뒤 부지런히 집안 곳곳을 움직였다. 그리고 학교에 느즈막히 올라가 친구들과 연습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몸보신을 해야한다며 내 최애 음식 제육볶음을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뒤로 한 채, 좋은 영양소가 풍부한 고등어 구이를 시켜먹었다. 밥은 일부러 한 숟갈을 남겼다. 다 먹으면 내일 춤 출 때 내 뱃살이 더 출렁거릴 수도 있으니까. 요가 가기전 시간이 남아 동기녀석과 함께 카페에서는 평소에는 돈아까워 잘 먹지도 않는 '허브티'를 시켜먹었다. 일부러 허브의 냄새를 온몸 구석구석 쑤셔넣기 위해 있는 힘껏 허브향을 체할 정도로 들이켰다. 그리고 하루의 화룡점정. 테라피 요가를 하며 그 동안 쓰지 않았던 고장난 몸에 기름칠을 하느라 고생한 내 몸을 달래주고 불안하고 격양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집에 가자마자 거짓말처럼 몸이 무거워졌다. 명상 어플로 명상을 하며 나는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새벽 5시.

 

알람이 한 소절 울리고

내 눈은 번쩍 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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