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적인 느낌의 네 번째 오디션 - 2

 

 

새벽 5시.

 

알람이 한 소절 울리고

내 눈은 번쩍 띄였다.

 

우리 집 고양이 타이도 따라서 잠에서 깼다.

이 아이도 평소엔 해 뜨기 전에 일어나는 법이 없는 집사가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뜨고 일어나니 놀라지 않았을까?

알람은 계속 울렸고 특정한 장소에 가서 특정한 사진을 찍어야 알람이 멈추는 어플 덕분에 거실로 나왔다.

알람이 멈춘 뒤 정적. 

 

내 긴 하루가 시작되었다.

 

 


내가 아는 한, 졸음을 가장 빨리 퇴치하는 방법은 '위'부터 깨우는 것이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머리맡에 홈런볼 한 봉지를 놔두고 잠에 들었다. 아침부터 느끼는 그 달달하고 살찌는 기분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일어나자 마자 입 안에 가공 식품을 집어 넣는 다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모닝 홈런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어제 요가 클래스를 마치고 사둔 샌드위치와 우유를 데워서 먹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2시간의 여정 동안 몸을 움직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몸을 푸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 속에 일상의 시간은 느린 듯 했지만 내 마음은 급했기 때문에 급하게 요가 동작 몇 번을 마무리 하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샤워를 하며 오늘 해야 할 안무를 되뇌이고 혹시나 부를지도 모르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렸다. 덕분에 평소보다 오래 샤워를 한 듯 하다.

 

출근해야 하는 룸메이트를 깨우고 집을 나선 6시 40분. 같이 오디션을 보러가는 친구에게 카톡을 남기고 아직 동이 틀 기미도 보이지 않는 거리로 나갔다. 텅텅 비어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리에는 출근길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추운 날씨,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마스크와 두터운 옷으로 중무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난 춤을 추기 위해 츄리닝 복장을 하고 에어팟에 흘러나오는 지정 안무 곡을 들으며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면 또 한 번 고난이 찾아온다. 지금 잠들면 기껏 일찍 일어난 보람이 사라지고 목은 냉정하게 잠겨버리고 만다. 오랜만에 보는 오디션이기에 긴장한 탓 인지 졸음이 쏟아지진 않았다. 그냥 계속 들었다. 계속. 귀가 아플 정도로. 지겨워 질법도 한 음악임에도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는 음악에 대한 예의도 차렸던 터라 내가 먼저 음악을 거부하진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지 3시간 30분 만에 오디션장에 도착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연습실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같이 간 친구는 이미 외부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덕분에 오디션장에서 꽤 많은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 친구가 내 친구라는 점. 만약 혼자 이 오디션장에 왔으면 나는 그 때 보다 10배는 더 쭈뼛거리고 소심해졌겠지? 이 또한 내가 익숙해져야할 부분이고 이겨내야 할 부분이니라. 친구의 친구와 인사를 하고 몸을 풀고 번호표를 받고 악보를 제출했다. 

 

주위를 살펴보며 몸을 푸는 사람들, 남을 의식한 듯 슬쩍슬쩍 카운트만 맞춰보는 사람들, 마치 앞에 심사위원이 있는 듯 풀파워로 춤을 추는 사람들, 어차피 안 볼 사람들이라며 내 갈 길 간다! 하고 거울 앞에 자리 잡고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사람들. 이 오디션장의 공기가 부담스러워서 자기가 만들어놓은 산소 캡슐속으로 들어가는 사람, 오디션장의 공기를 자신의 호흡으로 치환해버리는 사람.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한 시간 뒤에 있을 오디션장에서 '자기 자신'을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보여주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오디션 시간이 다가오자 컴퍼니 매니저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커피를 캐리어에 잔뜩 담아오고, 오디션장을 들락날락 거린다. 심사위원들이 도착했다는 신호를 직감한다. 덩달아 내 심장도 뛰기 시작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준비해온 것들을 점검하는 벼락치기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80%를 연습에 쏟아내고 내 차례가 되기전까진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에너지를 보충한 뒤 오디션장에서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심산이었다.

 

내가 속한 4번째 팀이 호명되고 나는 내 자리를 확인한다. 아뿔사, 뒷 줄 맨 사이드로 배치가 되었다. '나를 안보면 어떡하지?' 아니, '내가 안보이면 어떡하지?','앞 사람이 나를 가리면 어떡하지?'라는 별의 별 생각이 다들었지만 이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준비한 걸 쏟아내기만 하면 된다. 

 

 

 


들어가기 직전, 친구가 나를 붙잡아 세우더니 "안에서 자리 바꿔서 두 번 춘다고 하니까 처음에 절대 힘 다 빼지말고 앞 줄로 자리 바꿨을 때 다 쏟아내야 돼. 웃으면서! 잘 하고 와!" 이런 든든한 친구여. 너가 없었으면 처음부터 무리할 뻔 했네! 친구의 조언을 듣고, 오디션장으로 들어간다. 1차 오디션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김문정 음악감독, 쇼노트 프로듀서님들, 그리고 안무,연출 선생님들. 자리에 서서 번호와 이름을 말했다. 그래, 지금부터 오디션이다. 누구보다 내가 제이미의 일원이 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000번 배느님 입니다! 를 외쳤다. 

 

음악이 흐른다. 리듬을 탄다.

어차피 두 번째에 내 모든 걸 보여줄 거니까 지금은 즐기면서 힘을 덜 주고 춘다. 앞에 서계신 안무감독님은 번갈아가며 참가자들을 보고 무언가를 기록해나간다. 앉아 있는 다른 분들은 우리를 심사하는 느낌보다는 함께 즐겨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1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순식간에 지정 안무 심사가 끝이 났다. 내가 어떻게 췄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래 두 번째 때 내 매력으로 폭행을 하자!' 

 

"혹시 아크로바틱이나 테크닉 할 수 있는 거 보여주실 분 있나요?"

(정적)

"없으면 수고하셨습니다."

 

잉?? 두 번 이라며! 친구야... 두 번 이라며!! 나 아무것도 못보여 준 것 같은데.. 두 번 째에 내 모든걸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거야 친구야!! 자랑스러운 친구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친구한테 한 번밖에 안췄다고 했더니 친구도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끝난 마당에 문을 열고 '한 번 더 추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이번에도 이렇게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친구를 기다리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 동안 고생한 내 몸, 친구들과 함께 안무를 익히며 춤추던 시간들이 1분에 평가된다는 사실이 허무하기도 하면서 내가 이렇게 아직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스며들어왔다. 

 

'그래. 이제 겨우 네 번째인데.'

 

친구가 속해있는 여섯 번째 팀의 심사가 모두 끝나고 나를 포함한 4,5,6그룹의 결과가 발표가 되었다. 컴퍼니 매니저들이 핸드폰을 보며 형광펜으로 합격자 명단에 줄을 긋는다.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은 많은데 몇 명 밖에 긋지를 않는다. 그리고 호명이 시작된다. "호명되지 않은 분들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씁쓸하겠지?

 

000번 000씨 "네"

000번 000씨 "네!"

000번 000씨 "네"(배느님의 바로 앞 번호)

 

'그래.. 한 팀에 한 명씩 뽑는 거면 뭐..'

 

000번 배느님씨! "......네!"

 

 

처음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당황스러운데 기뻤다. 친구를 원망한게 미안했다. '그러고보니.. 노래해야 되는데?' 걱정이 되기도 했다. 홀린 듯이 내 자리로가 반주를 녹음할 악보를 챙겨 반주자에게로 갔다. 그리고 내가 가져간 자유곡 반주가 연습실에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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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적인 느낌(@feel_like_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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